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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울릉도·독도 수산자원 황폐화 원흉”
작성자 독도연구소 이메일
작성일 2013-06-07 조회 943
일제 강점기 울릉도·독도 수산자원 황폐화 원흉”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송휘영 교수 논문서 밝혀 기사입력 | 2013-06-07 해방전 울릉도 도동항 포구 전경 사진제공=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송휘영 교수.

일본의 한일 강제 병합시기 울릉도·독도에 대한 수산자원 황폐화 만행을 밝힌 논문이 발표됐다.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송휘영 교수는 최근 ‘일제 강점기 울릉도 거주 일본인들의 울릉도 독도 인식’이라는 논문을 통해 근대 울릉도·독도의 어업과 생활상을 소개했다.

송 교수는 논문에서 “1920년대부터 일본인에 의한 잠수기어업선의 도입으로 울릉도 근해 어장이 황폐화와 어족자원이 급감한 것은 일본인 거주자의 폭증과 상관관계가 높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러시아와 일본이 그 이전부터 울릉도의 원시림를 벌목해 황폐화시켰으며, 특히 일본은 울릉도·독도의 해산물을 독점채취하며 자원을 고갈시켰을 것”이라 주장했다.

울릉도공립심상소학교 사진제공= 영남대학교 독도연구소 송휘영 교수.

이에 대해 정부는 1900년 울릉도가 울도로 승격된 후 초대 군수 배계주가 벌목단속을 강화하면서 도항목적의 벌목에서 어로활동으로 점차 정책을 바꾸며 주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강치는 1905년 일본의 ‘죽도어렵학자회사’가 독도어업을 독점하며 남획으로 인한 멸종으로까지 몰고 갔다.

여기에 울릉도에서 통조림공장을 경영하던 우쿠무라 헤이타로가 1925부터 1932년까지 잠수기어선(5톤·소형발동기선박)으로 독도까지 왕래하며 4월하순에서 7월까지 약 3개월간 잡아 들인 전복양이 무려 하루에 600관 이었다고 밝혔다.

송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해방 전 울릉도 거주민은 1만 500여명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일본인이 600여명이 거주했고 직업으로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경찰관, 울릉도사, 교사, 선박업주, 공무원, 경영자, 통신소 등 그당시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일본인은 1905년 이전부터 울릉도에 진출해 강치잡이, 수산물가공 등으로 기반을 잡았고, 1910~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인 거주자는 1천200명~1천300명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한일 강제병합시기의 울릉도·독도에 대한 자료가 거의없는 실정으로 이 시기에 울릉도에 상류층으로 군림하던 울릉도 거주 일본인의(도우회)의 자료를 활용하면 근대 울릉도·독도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며 “수년간 울릉도와 일본 등에 방문해 수집한 사진·자료 등은 곧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송 교수는 “울릉도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일본으로 돌아가 ‘울릉도도우회’란 단체를 구성해 우익으로 활동하면서 ‘도우회보’ 를 수년간 발간했다”며 “이들중 일부는 1970년대에 울릉도까지 방문했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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